고대 이집트인들은 자신들의 경험으로부터 세계를 몇 개의 계곡으로 나누었다.

계곡의 서쪽에는 높은 산이 있고 그 산의 정상은 하늘과 맞닿아 있다고 여겼다.

그들은 하늘을 인간의 얼굴로 간주했고 태양과 달은 두 눈으로 여겼으며, 인간의 머리에서 내려뜨린 머리카락은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기둥으로 비유했다. 또 이 세상위에는 커다란 암소가 한 마리 서 있고, 인간은 이 암소에게서 태어났으며 이 암소는 매일 아침 새끼소를 낳는데, 그것이 매일 떠오르는 태양이다.

하늘에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커다란 강이 흐르고 태양신 라의 배는 매일 동쪽에서 나타나 강을 건너기 시작하여 저녁이 되면 서쪽 산으로 이동하고 일몰 후 깊은 계곡으로 사라져 다음날 아침 동쪽 하늘에 다시 출현한다.


하늘에는 라를 비롯해 남신과 여신이 살고 있으며, 생전에 선행을 해온 덕택에 천국 또는 낙원의 생활을 허락받은 사자(死者)도 여기에 거주한다. 천국은 '갈대밭'으로 불리는데 사자(獅子)의 머리와 수소의 머리로 장식된 옥좌에 앉아 있는 라 신이 지배하는 곳이다. 옥좌 주위에는 각종 신들이 주신인 라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다.

천국에서 사자는 현세에서보다 더 행복한 생활을 누린다. 천국에는 흰 잎의 보리와 누런 잎의 밀이 재배되고 포도와 무화과 나무가 자라고 있다. 천국은 어떤 어려움도 괴로움도 없이 즐거움만으로 가득 차 있는 곳이다. 물론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선택된 영혼뿐이다.

라는 이 세계를 창조하고 물과 대지에 살고 있는 모든 동식물을 만들었다. 또한 자신의 눈물로 지상의 인간을 만들었다.

그리하여 라는 천지만물의 창조주로서 이 세계를 오랫동안 지배하게 되었다.

그 사이에 라는 인간의 모습을 하고 매일 지상에 살면서 인간의 행위를 감시하게 되었다. 이때 이시스도 인간의 모습으로 내려와 지상에서 살게 되었다. 이시스는 지혜의 여신으로 인간에게 공예와 문화를 가르치고 단조로운 생활로부터 벗어나게 하여 문화의 씨앗을 뿌린 신이다.

무지한 인간에게 문화를 가르친 이시스는 어느 날 하늘로 올라갔을 때 언젠가는 자신도 라처럼 인간 세상을 지배해보고 싶은 욕구를 갖게 되었다. 라는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렸는데 특히 신과 인간에게 알려지지 않은 '비밀의 이름'을 갖고 있었다.

라의 절대적인 힘은 바로 '비밀의 이름'에서 나온다고 생각되었고 감히 그 이름을 누구도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시스는 달랐다. 어느 날 그녀는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무엇이 라의 비밀 이름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라와 동등한 힘을 가지면 될 것이 아닌가, 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마술의 힘으로 어떤 신, 어떤 인간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라의 비밀을 캐내야겠다. 매일 아침 라는 동쪽의 일출봉(이집트인들은 이곳을 바쿠bakhu라 불렀다)에 모습을 나타낸 후 저녁이 되면 영겁의 배를 타고 지하의 하늘을 비행한다.

라는 인간 세상에서 너무 오래 지낸 탓에 말을 할 때마다 입에서 침을 흘릴 정도로 노쇠했다.

이시스는 어느 날 라가 하늘에서 배를 타고 내려오는 것을 보고 그 배를 흙과 섞어 뱀의 형태로 만들고는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배는 뱀이 되어 움직였다.

이시스는 그 뱀을 라가 항상 다니는 길에 가져다 놓고 그가 오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라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다니던 길을 걸어갔다. 이때 한 마리의 뱀이 나타나 라의 다리를 물었다. 독은 곧 라의 전신에 퍼져서 고통을 가하기 시작했다.

라의 비명소리가 하늘에 도달하고 신들이 놀라 입에서 입으로 걱정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된 거야,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그러나 라는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었다. 독이 전신에 퍼지자 고통이 커져서 다리도 떨리고 이빨이 맞부딪쳐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의 고통이 커질수록 이집트 전역은 물로 뒤덮여 홍수 사태를 일으키게 되었다.

그는 고통을 참고 용기를 내서 일어난 다음 신들을 모이도록 했다.

신들은 라의 명령에 따라 곧 그의 주변에 모여들었다. 이 가운데는 마법을 사용한 이시스도 있었다. 신들은 주문을 외워 라의 고통을 제거하려고 노력했으나 허사였다. 독은 오히려 라의 심장 깊숙한 곳까지 퍼지기 시작했다.

신들은 깊은 비탄에 빠졌고, 어떤 고통도 중화시키며 죽은 자도 소생시키는 주문을 알고 있는 이시스는 침묵했다.

한참이 지나서야 이시스는 라의 앞으로 걸어 나갔다.

"군주여 어떻게 된 것입니까? 제가 반드시 뱀을 잡아서 죽이겠습니다.
제가 주문을 외워 당신의 적을 항복시키겠습니다. 당신의 영광스런 빛으로 독사를 퇴치하겠습니다."

이 말을 듣고 라는 입을 열었다.

"누가 무서운 독을 가졌는가, 누가 나를 죽이려 했는가. 불은 아닌가, 나의 육체가 타고 있다.
물은 아닌가, 나의 육체가 차가워져 수족이 떨리고 있다. 나의 눈도 희미해져 잘 보이지 않는다. 나의 얼굴에는 식은땀이 흘러내리고 있다."

이시스는 라의 앞으로 나가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당신의 비밀 이름을 털어놓을 수 없나요? 당신의 고귀한 이름의 힘이라면
고통을 덜 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라는 이시스를 바라보며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조물주다. 하늘과 대지를 만든 것은 나다. 나는 이 대지를 만들고, 산을 만들고,
또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대해(大海)를 만들었다. 나의 말 한마디면 나일의 물로 이집트 전국을 침수시킬 수 있다. 나는 모든 남신과 여신들의 아버지이며 그들에게 생명을 부여했다. 이 건조한 토양과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다와 모든 생물들을 만든 것이 바로 나다. 내가 눈을 열면 이 세계에 빛이 충만하고, 내가 눈을 감으면 이 세계는 어둠이 내린다.

나의 비밀 이름은 신들도 알 수 없다. 나는 새벽에는 케페라이며, 대낮에는 라이며,
오후 석양에는 하르마키스이며, 일몰에는 아툼이다."

그러나 이 위대한 힘을 가진 전능의 신 라도 고통을 떨쳐 버리지는 못했다.

독은 육체 내부로 스며들어 손과 발이 나뭇잎처럼 떨렸다. 라의 말을 들은 이시스는 속으로 냉소를 머금었다.


그녀의 마음속에는 라의 힘을 자기 것으로 만들고 싶은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옆에 있던 누조차 그 비밀의 이름을 알지 못했다고 여긴 이시스는 라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하늘의 아버지시여, 당신은 이제 소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당신이 갖고 있는
마력의 원천인 비밀의 이름을 밝힌 이상 그 힘을 나에게 주십시오. 당신의 힘과 나의 주술로 세상을 구하겠습니다."

이렇게 말하자 라의 육체에서 무서운 독이 연기와 같이 사라졌다.
그러자 라 신은 위엄 있는 목소리로 "나는 이시스에게 비밀의 이름을 주겠다. 그것은 이미 나의 마음에서 이시스의 마음으로 들어갔다"라고 외쳤다.

그러나 너무 갑자기 이루어져 라는 신들의 눈에서 사라지고 세계는 칠흑 같은 암흑에 둘러싸이게 되었다.
이시스는 어둠 속에서 라의 비밀 이름이 자신의 마음속으로 들어온 것을 알고 아들인 호루스를 불러

"이제 나는 주술의 힘으로 아버지 신의 두 눈(해와 달을 가리킨다)을 받았다. 이제 라를 다시 소생시켜야한다."고 얘기했다.

이시스가 주문을 외우자 뱀은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갔고 라도 소생하여 다시 위대한 모습을 갖게 되었다.

이때부터 이시스는 모든 신을 지배하는 힘을 갖게 되었다.

라의 치세가 오래 이어지자 인간들은 위대한 조물주인 라의 은혜를 차츰 잊기 시작했다.

라도 그 무렵 노쇠하여 뼈는 은과 같이 되고 육체는 금과 같이 되었으며 머리색은 유리색으로 변했다는 조롱에 찬 말을 자주 듣게 되었다. 라는 이처럼 불경스런 말을 듣자 은혜를 모르는 인간들을 증오하기 시작했다.

윽고 라는 신들에게 한자리에 모이도록 지시했다.

슈 신, 테프누트 여신, 게브 신, 누트 여신, 그리고 태초에 누 속에 살았던 남신과 여신들에게 인간의 눈에 뜨지 않도록 하여 헬리오폴리스의 궁정에 모이도록 했다. 헬리오폴리스에 모인 신들은 라에게 머리를 숙이고 어떤 일로 모이게 하였는지를 물었다. 잠시 후 라는 무거운 입을 열었다.

"오오 누여, 나는 제일 오래된 신이다. 나를 태어나게 한 것은 나 자신이다.

또 여기에 오래된 신들에게도 이 말을 전한다. 나 자신에 대한 반역의 말을 바로 내가 만든 인간들의 입으로 듣게 되었다. 나는 그들에게 모든 도를 가르치고 지혜도 빌려주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은 이제 내가 죽는 것을 바라고 있다.

나는 이제 인간에 대한 징벌을 내리고자 마음먹었다. 나의 희망을 접어두고 나는 내가 만든 것을 남기지 않고 파괴하여 전 세계를 본래의 깊은 바다로 되돌려놓으려고 생각한다.

다만 여기에는 나와 오시리스, 그의 아들 호루스 이외에는 어떤 생명도 가질 수 없게 할 것이다.

오시리스에게는 하계의 국가를 지배하는 힘을 주고, 호루스에게는 뜨거운 섬 위에 있는 옥좌를 주겠다.

여기서 나는 작은 뱀이 되어 신들의 눈에서 사라질 것이다."

이때 태고부터 하늘에 있는 거대한 폭포에 살았던 신, 모든 신의 아버지, 위대한 신의 동료를 만든 창조자이며 전 세계를 감싸고 있다고 믿었던 신, 라의 어머니 등의 이름을 갖고 있는 누가 머리를 들고 이렇게 간청했다.

"오오 나의 아들이여, 나는 그대를 낳았지만 그대는 나보다도 훨씬 위대한 신이다.
그대의 지위는 요지부동이며 누구도 넘볼 수 없다. 인간은 모두 그대를 두려워하고 있다. 그대의 왕국에서 모반을 한 사람들을 향해 눈을 응시해야 한다."

다른 신들도 이구동성으로 인간들은 모두 산속으로 숨어 자신들이 라를 경멸했던 말에 스스로 떨고 있으며 라가 인간들을 응시할 때면 어떤 인간도 눈을 뜨지 못할 것이라는 위로의 말을 하였다.

이윽고 라는 자신의 눈을 하토르 여신의 눈이 되게 하여 산 속으로 도망친 인간들을 차례로 죽이기 시작했다.

라가 인간을 죽이기 시작하자 나일 강은 인간의 피로 넘쳐흘렀다.

얼마 후 라가 이 모습을 보고는 곧 후회하기 시작했다. 불같이 타오르던 분노를 가라앉히고 마음을 가다듬어 살아 있는 인간들을 돕기로 하였다. 그는 바람과 같이 빠른 전령을 엘레판틴 섬으로 보내서 인간을 치료하는 약초를 가져오게 했다. 전령이 약초를 가져오자 라는 신들에게 명령하여 그것을 빻아서 보리와 함께 인간의 피를 조금 넣게 했다.

이렇게 해서 맥주를 만들고 7만 개의 병에 가득 채웠다. 새벽이 밝아올 무렵 라는 인간을 죽이면서 나일 강의 위로 거슬러 올라가는 하토르에게 더 이상 인간을 죽이지 말도록 명령했다.

복수의 여신 하토르가 살육을 중지하고 밤의 휴식장소로 돌아오자 라는 신들에게 명령하여 맥주를 가져오게 했다.

라가 병 속에 든 맥주를 쏟아 버리자 메말랐던 지상은 곧 홍수로 뒤덮여 사람들은 목을 축일 수 있게 되었다.

잠을 자고 있던 하토르는 놀란 눈으로 이를 바라보다가 강가에 가서 물에다 입술을 맞추고 그 물을 떠서 입에 넣었다.

그러나 너무 마신 나머지 취해 버려 이 지상을 돌아다닐 수 없게 되었다. 이를 지켜본 라는 하토르에게 이렇게 명령했다.

"지금부터 그대의 신전에서 아름다운 시녀들이 향기 좋은 술을 빚게 하라.
그리고 새해 첫날 축제를 열고 그대 앞에 공물로써 공납케 하라."

이때부터 나일 강물이 높아지고 붉은 물이 이집트 전역을 뒤덮을 무렵이면 매일 남녀가 함께 하는 주연이 마련되었다.

하토르와 누가 라의 앞에 다가오자 라는 낙담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이제 나는 더 이상의 고통을 참을 수 없다. 나는 오래 살았고 마음 또한 피로하다.
인간 속에서 살아왔지만 이제는 인간 세상이 싫어졌다. 내가 인간을 멸망시키고자 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나의 다리는 이미 힘이 없어서 걸어 다닐 수 없다. 나는 이제 이 새로운 고통을 받아들이고, 신들의 도움을 받아 하늘에서 새롭게 살아가야한다."

이 말을 듣고 누는 공기의 신 슈와 하늘의 신 누트에게 명령하여 라를 돕게 했다.

누가 하늘의 암소로 변하자 슈는 라를 소의 뱃속으로 집어넣었다. 그러자 세계는 갑자기 어둠에 휩싸이고 인간들은 공포에 떨기 시작했다. 라가 자신이 살았던 인간 세상을 뒤돌아보니 사람들은 자신에게 대했던 불경스러운 말을 후회하고 있음이 역력했다. 라에 대해 불경스런 말을 했던 사람들을 찾아 살해해야 한다는 인간들의 기원 소리도 들렸다.

그 후 인간들은 라의 빛이 다시 지구상에 나타날 때까지 라의 적들을 향해 격렬한 전투를 벌이고 마지막으로 그들을 살해했다. 라는 인간들의 충성스런 행동을 보고 기쁨에 넘쳐 "살육은 살육으로 보상받게 될 것이다. 그것은 적들에 대한 희생이다. 이제 너희들의 죄는 용서한다."

라고 말하며 인간이 지은 죄의 대가로 적들의 희생을 인정하였다.

그리고는 하늘의 여신 누트를 향해 말했다.

"오늘부터 나의 거주지는 하늘이다. 나는 이제 지상을 더 이상 지배하지 않는다."

이때부터 라는 천국에 영토를 정하고 천국의 밭을 가꾸고 개간하였으며, 신들을 위시하여 귀족들을 거주시켰다.

하늘의 암소 누로부터 생겨난 수많은 별들은 매일 밤하늘에서 빛을 발하여 라의 광영을 찬양했다.

라는 천상의 신들을 슈의 지배하에 두었고, 슈는 매일 밤 양손을 높이 들어 하늘의 암소와 빛나는 별들을 머리에 이게 되었다.

라는 이때부터 지상으로 내려오지 않고 천국의 커다란 바다를 건너, 매일 아침 케페라로서 동쪽 정상에 모습을 나타내고 한낮에는 라로, 저녁에는 아툼으로서 서쪽 산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출처 : 깡깡이집트>
2011/11/03 17:26 2011/11/03 17:26
Posted by 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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