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의대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연대에는 25주년 재상봉이라는 행사가 있다. 재상봉이 무엇인가 하면 졸업 후 25년 후 동기들이 다시 한자리에 모이는 행사다. 올해 재상봉을 하시는 해부학 교수님의 부탁으로 사진반에서는 앨범을 만들기 위해 교수님 동기 분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있다. 한 120명쯤 되는데다 계시는 지역도 전국에 퍼져계시니 참 쉬운 일이 아니다. 제주도에도 계시고 땅 끝 강진에도 계시고 심지어 캐나다에도.. 게다가 우리도 분기말이 있는 처지라 늦어도 4월초까지는 일을 끝마쳐야 하는 부담도 있다.
우선은 집근처에 계신 분들부터 찍기로 했다. 나는 서초구와 동작구에 계신 분들을 맡았다. 대부분 개인병원을 운영하시기 때문에 미리 전화로 약속을 잡고 찾아가서 사진 몇 장만 찍으면 된다. 하는 일은 간단한데 바쁘신 분들이라 시간을 내기가 힘들고, 병원까지 오고가고 하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린다. 사실 병원을 가면서 귀찮기도 하고 이 황금 같은 주말에 약속도 못 잡고 지나가는 게 아깝기도 하다.
병원까지 가는 과정은 귀찮지만 일단 병원에 들어서면 묘하게 많은 생각이 든다. 대부분 미래에 관한 생각이다. 과연 나는 어떤 전공을 택하는 게 좋을까? 앞으로 졸업하면 나도 이렇게 개원을 하게 될까? 만약 개원하게 되면 이렇게 바쁘게 살아야하나? 등등.. 또 집 근처나 강남역에 있는 병원을 갈 때면 이곳에 병원이 있었나하는 생각이 든다. 20년을 넘게 살았는데 정말 관심이 없었구나 싶기도 하고..
가끔 생각지도 못했던 이벤트도 생겨서 재미있기도 하다. 한 번은 이외수 씨 같은 모습의 정신과 선생님을 찾아뵈고 참 특이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30~40대라면 누구나 알법한 노래를 부르셨던 가수였던 거다. 노래방에서 그 노래를 입력하니까 젊었을 때 그분의 노래하는 영상이 나와 신기했다. 선생님들을 찾아뵈면 대부분 좋은 말씀을 해주신다. 술을 주실 때도 있고, 때론 밥을 사주시기도 하고.. 이런 예상할 수 없는 작은 이벤트 때문에 사진 찍는 작업이 조금은 재미있는 것 같다.
만났던 한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졸업하고 개원해서 생활한지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25년이 지났다고.. 세월 참 빨리 간다고.. 정말 공감이 된다. 얼마 전 고등학교 동문회를 나갔는데 이제 11학번이 들어온 거다. 무려 10살이나 어린 후배들이다. 처음 대학교에 입학 후 동문회를 했을 때 나보다 10살 많은 선배를 보고 정말 어려워했던 기억이 난다. 난 별로 변한 것 같지도 않은데 이미 노땅이 되어버린 것이다. 졸업하고 일하다보면 25년은 정말 쉽게 지나갈 것 같다. 그저 열심히 사는 수밖에..
이제 서울은 대부분 끝났고 수원에 계신 선생님들이 남았다. 나는 아주대에 계신 분들을 찍게 되었다. 그동안 개원하신 선생님들을 만났는데 대학병원에서 교수로 계신 분들은 어떤 모습으로 생활하실지 궁금하긴 하다. 물론 찾아뵙고 나면 좋겠지만 그전에 연락드리고 약속잡고 수원까지 내려가려니 벌써 귀찮아지는 건 어쩔 수 없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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