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물건을 잘 잃어버리는 편이다. 보기에는 꼼꼼해 보이는 편이지만 사실 굉장히 덤벙된다. 캐나다에 와서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비가 오던 어느 날 우산을 갖고 학교에 갔다 깜빡하고 강의실에 우산을 놓고 강의실을 빠져나왔다. 우산을 놓고 온 사실을 알게 된 후 강의실로 돌아갔지만 우산은 누군가가 벌써 가져간 상태였다. 남의 물건을 갖고 간 사람에게도 잘못은 있지만 물건을 놓고 간 내가 원인제공을 했으니 누굴 탓하랴. 보스턴에 있을 때부터 4년간 잘 사용하던 우산을 잃어버리니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 후 비가와도 웬만하지 않고서는 그냥 비를 맞고 다닌다.
오늘 또 일이 터졌다. 이번에는 필통을 강의실에 놓고 온 것이다. 필통을 놓고 온 것을 알고 2시간 만에 강의실로 돌아왔지만 필통은 벌써 누군가에 의해 사라진 상태였다. 강의실에 한동안 멍하니 서있었다. 필통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지금도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심지어 꿈속에서도 필통이 아직 내 가방 안에 있는 꿈을 꾼다.
사실 필통의 값어치를 따지면 1000원도 안될 것이다. 하지만 그 필통에는 내가 중고등학교 때부터 사용했던 샤프와 펜이 들어있다. 그 중에서도 10년 이상을 사용했던 파카샤프가 그 안에 있었다. 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도, 대학에 와서도 늘 함께 했던 샤프였다. 중간고사, 기말고사는 물론, 각종 시험, 심지어는 수능까지도 늘 함께 했었다. 나에게는 샤프라는 필기도구 이상의 물건이었다. 영화 “캐스트 어웨이”를 보면 톰 행크스가 윌슨이라고 이름 지어준 낡아서 터진 배구공이 자신의 뗏목에서 떨어져 바다 저 멀리 밀려가는 모습을 보고 슬퍼하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를 볼 당시엔 낡아서 터진 공을 잃어버린 것 가지고 저렇게 우나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 기분은 이해할 것 같다. 아니, 충분히 공감하고 있다.
어떤 사람은 샤프 하나 잃어버린 것 가지고 궁상을 떤다고 생각할 것이다. 나도 속편하게 그렇게 생각하고 말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늘 곁에 있던 것이 없어진 지금 마음속 한구석이 너무 허전하다. 정말이지 우울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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