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일간의 인도여행. 다양한 문화와 자연환경을 갖고 있는 인도라는 나라를 수박 겉핥기식으로 보기에도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여행을 통해 확실히 한 가지는 느끼고 왔다. 세상은 한 가지 패러다임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패러다임이 공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상식으로 생각하는 것이 저기서는 상식이 아닐 수가 있다. 예를 들어, 화장실에서 용변을 보고 휴지를 사용하는 것이 우리에게는 당연한 것이겠지만 인도에서는 휴지라는 것이 없다. 이것이 인도가 미개한 나라이기 때문에 그럴까? 그들은 휴지라는 것이 왜 필요하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단지 서로의 문화가 다른 것이다. 지금까지 나는 한 가지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이것이 절대적인 진리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물론 미국과 캐나다에서 1년씩 살았지만 지금 우리의 관점이 그들의 관점이기 때문에 큰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인도를 통해 또 다른 시선이 존재하고 있고 어떤 것이 옳다고 할 수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구라는 행성에 여러 세상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이번 여행을 통해 얻게 된 가장 큰 수확일 아닐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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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마시게 되는 음료수는 아마도 짜이일 것이다. 짜이는 인도를 대표하는 음료로 설탕, 질 낮은 홍차, 우유, 계피나 생강 등을 넣고 달이다시피 끓인다. 인도사람들이 즐겨 마시는 음료이기 때문에 어느 도시를 가더라도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여행을 하다보면 남대문 옷가게 아저씨의 목소리로 “짜이, 짜이, 짜이~” 하는 짜이 파는 사람들이 목소리에 중독이 돼서 한 두 번씩은 따라하게 된다. 여행자들 중에도 짜이의 맛에 반하게 되어 귀국할 때 잔뜩 사오는 사람도 많다. 나 역시 인도 여행을 하면서 즐겨 마셨다. 왠지 불량식품 같은 것이 중독성이 있다.
토기 같은 잔에 주기도 하지만
보통 작은 유리잔이나 플라스틱잔에 담아준다.
가격은 보통 2루피(약 6원) 정도이다.
이번 인도여행의 종착역 사르나트. 사르나트는 싯다르타가 깨달음을 얻은 후 처음으로 설법을 전파한 곳으로 불교 4대 성지 중 하나로 유명하다. (참고로 불교 4대 성지는 붓다의 탄생지 룸비니, 붓다가 깨달음을 얻은 보드가야, 첫 설법지 사르나트, 열반지 꾸쉬나가르다.) 사르나트는 바라나시에서 12km 떨어져 있기 때문에 바라나시를 기점 삼아 당일치기를 다녀온다. 처음 바라나시에서 사르나트를 가려고 했을 때 인도여행에서 처음으로 비가 쏟아져 내려서 가다가 다시 돌아왔다. 아마도 이날은 사르나트 방문이 허락되지 않을 운명이었던 것 같다. 결국 네팔에서 꼴까따를 포기하고 다시 바라나시로 돌아와서야 사르나트를 갈 수 있었다.
사르나트는 조용하고 평화롭다.
다마라지까 스투파
붓다가 처음으로 설법을 행한 자리로 추정되는 곳에 세운 스투파.
원래는 높이가 30m나 될 정도로 거대했지만
바라나시의 마하라자가 자신을 건물을 짓는데 필요한 벽돌을 해결하기 위해
어이없이 헐어버렸다고 한다.
다멕 스투파
이슬람의 침입 속에서도 온전히 보존된 불교 유적.
다멕 스투파 벽면에 새겨진 조각
물라간다 꾸띠 비하르
라씨는 짜이와 더불어 인도 여행자들이 가장 많이 마시는 음료수일 것이다. 라씨를 처음 들어보는 사람이라면 걸쭉한 요구르트정도로 생각하면 될 듯하다. 일반적으로 바나나나 망고 같은 과일을 넣어 먹는데 달콤하고 깨끗한 맛 때문에 계속 찾게 된다. 나 역시 라씨를 좋아해서 대부분의 도시에서 라씨를 마셨다. 기억에 남는 곳으로는 바라나시의 블루 라씨와 델리 빠하르간지 끝에 있는 라씨 가게가 기억에 남는다.
아직도 전통적인 방법으로 라씨를 만드는 것 같다.
특히나 한국 사람들에게 있기가 많다.
빠하르간지를 걷다보면 멀리서부터 알아보고 사람 수만큼 손가락을 올린다.
현대식(?) 기계를 사용하고 걸쭉하지도 않지만 맛은 괜찮다.
바라나시에서 얻는 깨달음(?)이라 할까? 블루 라씨에서 라씨를 먹고 있었다. 라씨를 주문하면 위의 사진에 보이는 꼬마 뒤에 있는 주황색 토기 같은 그릇에 라씨를 담아준다. 라씨를 맛있게 먹고 있는데 그 쌓여진 토기들 사이로 쥐가 살금살금 지나다니는 것이다. 아마 나를 아는 사람이라면 쥐를 얼마나 싫어하는지 알 것이다. 그런데 내가 먹는 이 그릇이 쥐의 체취가 남아있는 것이라니.. 그 후 난 이곳에서 라씨를 먹지 않았다. 하지만 여행을 다니면서 생각을 했다. 어차피 어떤 음식점이나 숙소에 가도 쥐가 없는 것은 아니다. 쥐는 어디든 있지만 문제는 내가 있는 동안 그것을 보느냐 못 보느냐 차이지. 즉 나는 늘 쥐와 함께 먹고 자는 것이다. 그리고 그 토기 옆을 지나가는 동물이 쥐가 아니고 참새나 강아지였다면 내가 그랬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쥐가 더 비위생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더러운 건 매한가지다. 같은 동물인데 어떤 동물의 흔적이 남아있느냐에 따라 아무렇지도 않게 먹을 수 있고 또는 역겨워할 수도 있다. 아마 쥐라는 동물을 혐오하는 나의 편견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내가 참새를 혐오했다면 상황은 그 반대였을 것이고. 이런 말도 안 되는 자기합리화를 하니 그 다음부터는 이런 상황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다시 바라나시에 돌아왔을때 난 블루 라씨에서 맛있게 라씨를 먹을 수 있었다.
힌두교인에게 강가는 매우 성스러운 곳이기 때문에
이곳에서 목욕을 하면 죄도 씻겨 나간다고 믿는다.
힌두교인에게 평생소원이 강가에서 목욕하는 것이라고 하니
그들에게 강가란 어떤 의미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니 온갖 오물이 떠다니는 강물을 마시기까지 한다.
정말 종교의 힘이란..
인도에서 소를 숭배하는 것은 다 아는 사실.
소가 도로한복판에서 잠을 자고 있으면 차들은 소를 비켜간다.
달리던 기차도 소가 선로에 서 있으면 멈추고 소를 지나가게 하고 다시 달린다.
소가 똥을 싸면 그것을 모아 반죽을 해서 벽에 붙여두고 말린다.
아마 땔감으로 사용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우스갯소리로 이것을 초코파이라고 불렀다.
강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풍경은 빨래하는 사람들이다.
기억에 빨래하는 사람들은 카스트 최하위 계급이라고 들었다.
그들의 얼굴에서 고된 삶을 볼 수 있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가에서 빨래하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햇빛에 말리고 있는 빨래.
깨끗해 보이지만 나는 이 옷을 못 입을 것 같다.
타다 남은 시체의 일부가 떠다니는 강가에서 한 빨래를..
바라나시에 가면 빼놓지 말고 해야 할 것? 바로 보트 투어다. 사공이 노를 젓는 보트에 앉아 강을 따라 천천히 이동하면서 바라나시를 바라보는 순간은 뭐랄까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정이 든다. 백문이 불여일견. 일단 타고 보자. 가트에서 강가를 바라보면 정박된 수많은 보트를 볼 수 있다. 굳이 먼저 가서 묻지 않아도 사공들이 와서 흥정을 시작한다. 가격은 보트 하나를 기준으로 한 시간에 100루피 정도로 생각하면 될 듯하다. 그러니까 혼자 타게 되면 100루피를 넷이 타게 되면 25루피를 내면 된다. 투어가 끝나고 약간의 팁은 본인의 결정에 따라서..
보트 투어는 이런 분위기를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보트 투어는 때론 교통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보트 투어는 일반적으로 일몰과 일출 무렵에 하는 것이 가장 아름답다고 한다. 나는 보트 투어가 너무 마음에 들어 일몰과 일출 무렵, 그리고 저녁까지 세 번 탔는데, 매번 갠지스 강의 다른 색깔과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어 지루하지 않았다. 매순간 다 좋았지만 굳이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면 일출 무렵에 타는 것을 추천한다. 아직은 사방이 어스름하지만 곧 태양이 떠오를 것이기에 하늘은 어떤 역동적인 힘이 느껴지고, 아직 한밤인양 빛나고 있는 전등불과 푸르스름한 강의 공기가 합쳐서 묘한 빛깔과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그러다 해가 뜨는 순간 세상은 붉게 물들어 버린다. 이런 모습을 천천히 움직이는 배위에서 바라보고 있노라면 세상의 어떤 그림보다 아름다운 자연 그 자체의 모습에 감동하게 된다.
세상을 붉게 만드는 일출
마치 도시가 타오르는 것 같은 모습
일몰 사진은 실제 모습의 반도 담지 못해 아쉽다.
바라나시의 야경
보트에서 바라본 바라나시의 풍경들
멀리보이는 이슬람 사원이 알람기르 모스크
보트 투어를 하고 있는 인도 관광객들
소원을 담에 강가에 초를 흘려보내고..
주의!! 이제 앞에서 말하지 않았던 주의사항을 말하고자 한다. 다들 예상은 하겠지만 강가를 맑고 깨끗한 강으로 기대를 하고 가면 그만큼 실망이 크다. 인도인들에게 강가는 천계에 흐르던 강이 쉬바 신의 도움으로 지상에 내려온 신성한 장소지만 종교적으로 관련이 없는 여행자들에게는 더러운 강물로 보이기 쉽다. 동물의 배설물(아마 사람의 배설물도..), 각종 오물, 그리고 화장터에서 타다 남은 시신까지 부유물로 떠다니고 있는 곳이라는 것을 미리 머릿속에 염두에 두어두시길! 그리고 한 가지 더. 보트 투어를 하다보면 정말 깜짝 놀랄 일이 생길 수도 있다. 그게 무엇이냐면 강에 시체가 떠오르는 것이다. 인도에서는 아기와 수도승 같은 다섯 부류의 사람들은 화장하지 않고 하얀 천에 싸서 강가에 던진다. 그래서 종종 강에 떠다니는 시체를 볼 수 있다. 나도 세 번의 보트 투어 중에 두 번을 봤다. 다행히 나의 경우는 하얀 천에 싸여있어 말해주지 않았으면 시체인지도 모르고 넘어갔겠지만 천이 벗겨서 시체를 고스란히 봤다는 사람도 있었다. 아무 것도 모르고 그런 상황에 처하게 되면 정말 기겁하게 될 수도 있으니 이 또한 염두에 두고 있어야겠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곤 한다. ‘바라나시를 보지 않았다면 인도를 본 것이 아니다. 바라나시를 보았다면 인도를 다 본 것이다.’라고.. 강가에서 경건한 자세로 목욕하는 사람들, 빨래하는 사람들, 화장터에서 불타고 있는 시체들, 연을 날리며 노는 아이들 등등. 정말이지 바라나시는 인도하면 떠오르는 모든 이미지를 간직하고 있는 도시다. 여행자에 따라 바라나시를 즐기는 방법도 다양하지만 바라나시의 가장 큰 볼거리는 강가에서 연출되는 다양한 풍경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 역시 대부분의 시간을 강가에서 보냈다. 강을 따라 길게 이어진 가트를 걷기도 하고 보트 위에서 바라보기도 했다. 지금까지 많은 도시를 돌아다녔지만 바라나시만큼 자기만의 색깔이 뚜렷한 도시는 없었지 않았나 싶다.
인도는 철학의 나라가 아니라 철학을 하게 하는 토양을 갖춘 나라라고 한다. 바라나시의 가트를 걷다보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과연 내가 살고 있는 삶이 행복한가? 삶이란 무엇일까? 종교가 삶에 얼마만큼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세상은 모두에게 공평할 것인가? 등등. 누구라도 눈앞에 펼쳐진 상황을 보면서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하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평소에 생각이 많지 않은 나지만 바라나시에 있는 동안 전에는 관심 없던 정치, 경제, 종교까지에도 관심이 생기는 것을 보면.. 바라나시에서는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며칠에서 몇 달까지 머물 수 있는 곳이다. 인도 전통 악기를 배울 수 있고, 요가도, 명상법도 배울 수 있다. 하지만 그럴 시간적 여유가 없다면 이처럼 가트를 걸어 다니면서 스스로 생각할 시간을 갖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인도여행을 하면서 힘들다고 느꼈던 적이 두 번 있었다. 한번은 네팔에서 바라나시로 가는 야간버스였고 다른 한번은 카주라호에서 바라나시로 가는 기차에서였다. 네팔에서 바라나시로 가는 야간버스는 의자 사이의 간격도 좁고 의자의 각도도 거의 90도여서 졸리면서도 잠을 잘 수 없었다. 그동안 야간버스, 야간기차를 무수히 탔지만 이번처럼 힘든 것은 처음이었다. 게다가 새벽 세시에 도착하는 바람에 차가운 터미널 바닥에서 신문지 깔고 노숙까지 했었기에 기억에 많이 남는다.
카주라호에서 바라나시로 가는 야간기차에서의 고생은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 우리는 자리를 예약하지 못해서 야간기차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입석을 사버렸다. 인도 기차의 입석을 우습게 봤다가 정말 쓰레기장 같은 바닥에서 쥐와 함께 잠을 잘 뻔했다. 천만다행으로 아그라에서 만났던 청용이와 택범이를 만나 잠을 자기 전까지 그 친구들 자리에 가방을 올려놓고 잠시 쉴 수 있었다. 기차의 불이 꺼지고 다들 잠을 자는 시간이 왔다. 아무래도 바닥에서 잘 수는 없을 것 같아 비어있는 침대에서 잠을 자기로 했다. 뭐 주인이 오면 쫓아내겠지 하는 생각으로.. 그때부터 자다가 자리주인이 깨우면 일어나서 비어있는 침대로 옮기는 메뚜기 인생이 시작되었다. 밤새도록 그렇게 새우잠을 자면서 기차 안을 돌아다녔더니 다음날은 제정신으로 걸을 힘도 나지 않았다. 아무튼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바라나시로 가는 길은 두 번 다 험난하고 힘들었다.
청용이와 택범이의 자리에 있는 동안은 행복했다.
인도를 돌아다니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인연이란 것이 참 묘하다고 느낀 이유는 이번 여행에서 만났던 대부분 사람들을 다른 도시에서 한 번 더 만났기 때문이다. 물론 인도라는 나라를 여행하는 중이니까 돌아다니다 보면 다시 만날 확률이 높은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대부분 유명 관광지를 위주로 돌아다니니 더 그럴 수밖에 없고.. 많은 여행자들이 이런 경험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여행을 하다보면 언제 어디서 만나기로 약속하고서도 예상치 못한 사정이 생겨 만나지 못하는 경우도 흔하다. 하물며 서로 여행 루트와 일정이 달라서 헤어진 사람들이 다시 만날 확률은 얼마나 될까? 이런 것들을 생각하지 않더라도 수십억의 세계 인구 중에서 같은 날, 같은 자리에서 만나게 될 확률은 얼마일까? 전생에 어떤 깊은 관계였을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것이 인연이 아닐까 생각한다.
Gicela
Natalie와 Gicela의 경우도 나에게는 참 특별한 인연이라고 생각된다. Natalie는 브라질 사람이고 Gicela는 아르헨티나 사람이라 사실 인도는 너무 멀어서 거의 올 기회가 없다고 한다. 그런데 둘 다 프랑스에서 유학을 하는 중이라 휴일을 이용해 인도에 오게 됐다고.. 어찌 보면 평생 만날 기회조차 없는 사람들이지만 이렇게 만나게 되었고 일정이 비슷해 오르차, 카주라호 그리고 바라나시까지 여행의 1/4 동안을 함께 했다. 바라나시에서 나는 네팔로, 둘은 보드가야로 전혀 다른 경로와 일정으로 헤어지게 되었다. 하지만 15일이 지나고 네팔에서 꼴까따로 넘어가려던 계획에 차질이 생겨 바라나시로 돌아왔을 때 신기하게도 그 둘을 다시 보게 됐다. 그들도 그날 바라나시에 도착한 것이다. 원래 보드가야와 다르질링을 지나 남부로 넘어가려고 했지만 바라나시가 아쉬워서 다시 돌아왔다고 한다. 이제는 평생 못 볼 것이라고 생각했던 이들을 바라나시의 골목에서 마주쳤을 때 얼마나 반갑던지.. 이렇게 인연은 일부러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마주치도록 되어 있는 것 같다.
Natalie
서부 사원군은 서부 사원군만 둘러봐도 카주라호의 분위기를 느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카주라호를 대표하는 볼거리라고 생각된다. 규모가 클 뿐만 아니라 카주라호를 유명하게 만든 남녀교합상인 미투나 상이 몰려 있고, 숙소 역시 서부 사원군 주위에 밀집되어 있어서 접근성도 좋다.
비쉬누 신의 세 번째 화신 바라하.
멧돼지의 모습을 하고 있다.
서부 사원군을 들어가서 거의 처음에 보게 되는 곳이다.
여기서 잠깐!!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 ‘아바타’의 뜻은??
‘아바타’는 원래 힌두교의 비쉬누 신과 관련된 말이다. 비쉬누 신이 어지러운 세상을 구하기 위해 인간 혹은 반인반수의 모습으로 지상에 출현할 때가 있는데, 이 모습을 ‘아바타’라고 부른다. 때로는 신에 버금가는 성자에게도 신의 화신이라는 의미를 붙여서 ‘아바타’라고 부른다고 한다. 우리도 인터넷에서 자신의 분신을 가리킬 때 ‘아바타’라는 표현을 쓴다. 대표적인 사이트로 프리첼이 있다.
기단부분에 새겨져 있는 미투나 상들
이런 적나라한 미투나들은 사원 북쪽과 남쪽에 새겨져 있다.
동쪽과 서쪽은 신성한 태양이 지나가는 방위기 때문에 음란할 수 없다고 한다.
또 해가 있는 낮에는 하지 말라는 의미라고..
가장 유명한 ‘말과 성행위 하는 남자와 그를 바라보는 여자 상’
가이드북에는 워낙 깊숙한 곳에 감춰져 있어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해서
찾을 생각도 없었는데 나에게는 그냥 눈에 들어왔다. (난 뭐지? -_-)
이 미투나는 락쉬마나 사원 남쪽 기단에 있다.
락쉬마나 사원 뒤에서..
카다리야 마하데브 사원
이 사원 내부에 226개, 외부에 646개의 조각상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카주라호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미투나 상들도 이곳에 밀집돼 있다.
남쪽 벽면에 새겨진 다양한 체위의 미투나 조각들
성애서 <카마수트라>의 원전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라고 한다.
<카마수트라>란?
<카마수트라>는 힌두교의 신 쉬바와 빠르바티가 약 10만 년에 걸쳐 한 108,000가지 섹스체위 중 핵심적인 108가지 체위만 추려낸 것이 성전 <카마수트라>라고 한다. 이런 미투나들이 많은 이유는 고대 인도인들은 남성과 여성, 그 자체로는 불완전하다고 믿어서 남녀는 짝을 찾아 서로의 불완전성을 보충하려고 하는데, 섹스로 합일된 상태가 인간이 가장 완전한 상태라고 봤기 때문이라고.. 이탈리아 폼페이에도 다양한 체위의 벽화가 그려진 것을 보면 고대 사람들의 공통적 생각이 아니었을까 싶다.
내부의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