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지구는 카이로 시내 동쪽 넓은 지역을 차지하고 있다. 이슬람 지구로 가려면 람세스 광장에서 마이크로버스를 타면 된다.
이슬람 지구를 둘러보니 두 가지가 눈에 들어왔다. 첫째, 이슬람 지구라는 명칭처럼 역사적인 이슬람 건축물이 눈에 들어온다. 가마 아즈하르, 바슈타르 궁전, 푸트흐 문과 나스르 문 등 다양한 이슬람 건축물을 볼 수 있다. 한국에서 이태원에 있는 모스크 하나를 보면서도 독특하다고 신기해했는데, 이곳은 온통 그런 건축물 천지다. 이슬람 문화권이니 당연한 것이겠지만.. 중동을 돌아다니면서 자꾸 이런 이슬람 건축물을 보니 나중에는 봐도 별다른 감흥이 없어지긴 했지만 카이로에 있는 동안은 나의 눈을 사로잡았다.
둘째, 이슬람 지구를 둘러보면 이집트 서민들의 생활이 눈에 들어온다. 여행의 재미 중 한 가지는 그 나라 서민들의 생활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이건 한국을 여행하는 관광객에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한국으로 여행을 와서 신세계 백화점이나 롯데 백화점을 데리고 간다면 무슨 재미가 있을까? 또 고급 프랑스 레스토랑에 데리고 간다고 추억이 될까? 이런 것들은 굳이 한국에 오지 않아도 어디서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남대문 시장이나 동대문 시장에 가서 쇼핑하고 분식집에서 떡볶이나 튀김을 먹는 게 추억이 될 것이다. 이슬람 지구도 마찬가지로 이집트에서만 느낄 수 있는 그런 곳이다. 독특한 이슬람 건축물과 그곳에서 역동적으로 생활하고 있는 이집트인들의 모습은 한 장의 멋진 사진을 만든다.
한 하릴리는 이슬람 지구에 있는 각종 기념품 가게가 몰려있는 거대한 시장이다. 어느 나라를 여행하든 시장은 그 나라 서민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는 곳이다. 이집트 시장의 모습도 인도의 시장과 비슷하게 우리나라 70~80년대 시장을 보는듯하다. 때문에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친근한 느낌이 든다. 그러면서도 가게에 진열된 화려한 금속세공이나 식기, 나무상자, 시샤 등 이국적인 물건들을 보면 내가 한국을 벗어나 지구 반대편으로 왔다는 게 실감난다. 한 곳에 자리 잡고 앉아서 이런 이국적인 물건들, 나와는 다른 복장의 이집트인들, 시장에서 가격 흥정을 하는 이집트인들의 일상을 바라보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이게 여행의 재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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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 카이로는 카이로 중심부 남쪽에 위치한다. 가는 방법도, 유적지를 둘러보기도 수월하다. 올드 카이로로 가려면 여행자 숙소가 많은 타흐리르에서 지하철을 타고 몇 정거장만 남쪽으로 내려오면 된다. 그리고 대부분의 유적지가 모여 있어서 둘러보는데 반나절이면 충분할 것 같다. 이곳에는 로마시대의 탑과 성벽, 오랜 역사의 콥트 교회 등이 있다.
올드 카이로는 카이로의 발상지이다. 카이로가 이슬람화 되기 전에 일찍부터 콥트교라는 그리스도교가 퍼져있었다. 로마 비잔틴 제국의 콘스탄티노플 교황으로부터 451년에 이단 선고를 받게 되었지만 그 후로도 콥트 교회는 독자적인 길을 걷게 되고 현재도 이집트 인구의 약 10%에 해당하는 300만~400만의 콥트 교도들이 이집트에 살고 있다. 요즘 종종 뉴스에 나오는 이집트 종교 갈등이 이 콥트교과 이슬람교의 충돌 때문이다.
그동안 교회유적을 많이 봤기 때문에 기독교인이 아닌 입장에서 올드 카이로는 나에게 그리 특별한 의미가 있지도, 인상적이지도 않았다. 콥트 박물관을 통해 콥트 문화에 대해 약간이나마 이해할 수 있어서 좋은 정도. 하지만 이와 관련된 종교를 믿는 사람이라면 그 나름의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실제로 이곳을 둘러보는 동안 성지방문을 위한 단체관광객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카이로 중심부는 배낭여행자들이 찾는 저렴한 숙소가 몰려있는 타흐리르 광장 주변으로 형성되어있다. 아마도 타흐리르 광장이 어딘지는 잘 몰라도 이집트의 민주화 시위가 일어났던 장소로 워낙 뉴스를 통해 많이 보도가 되어 한 번쯤은 들어봤으리라 생각된다. 서울의 명동 같은 곳으로 현대식의 건물과 나름 세련된 이집트 사람들을 볼 수 있는 곳이다. 그리고 하루에 한 번씩은 꼭 가서 사먹었던 맛있는 아이스크림이 있는 EL ABD도 이곳에 있다.
무엇보다도 카이로 중심부에는 카이로 관광에서 빠질 수 없는 고고학 박물관이 있다. 전시물이 얼마나 많은지 대충 둘러보려고 해도 몇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린다. 그 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것은 투탕카멘왕의 황금마스크가 있는 전시실과 역대 왕들의 미라 전시실이었다.
투탕카멘왕은 역사적으로 그다지 주목받지 못한 왕이었다. 재위 3년 만에 18살이라는 나이에 죽어서 남겨진 업적은 전무하다시피 한 무명의 왕이었지만, 그의 무덤이 람세스 6세의 무덤에 입구가 가려지는 바람에 도굴을 피할 수 있었다. 이 무덤을 발견했을 때, 3000년 전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고, 모든 부장품도 그대로 남아있었다. 그 덕분에 엄청난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 고고학 박물관에는 투탕카멘의 전시실이 있는데 거기에는 그 유명한 투탕카멘의 황금마스크가 있다. 11 Kg 황금으로 만들어진 이 마스크는 박물관 전시물을 통틀어 가장 인상적이었다.
고고학 박물관에는 투탕카멘 전시실과 더불어 인상적이었던 미라 전시실이 있다. 이 미라 전시실을 들어가기 위해서는 박물관 입장료 보다 비싼 입장료를 다시 내고 들어가야 한다. 전시실은 매우 단순하다. 그저 역대 왕들의 미라가 쭉 전시돼있다. 물론 얼굴이 공개된 채로.. 어찌 보면 우리나라 문화에서는 상당히 충격적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조선시대를 예로 들자면 태조 이성계부터 유명한 왕들의 시신이 전시되고 있는 것과 다름없으니 말이다. 이집트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람세스 2세의 미라도 볼 수 있다. 하지만 투탕카멘의 미라는 여기서 볼 수 없는데 이 미라는 룩소르의 왕가의 골짜기 특별 전시관에 전시되어있다. 미라 전시실에 들어가기 위해서 추가로 입장료를 내야 하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으니 고고학 박물관에 갈 기회가 있으면 꼭 가보시길..
고고학 박물관의 전시물은 정말 많지만 관리가 너무 허술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집트에 워낙 유물이 많기 때문에 중요하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유물을 전시한다는 느낌보다는 창고에 쌓아둔 느낌이 든다. 게다가 이번 이집트 민주화 시위 중에 고고학 박물관의 유물이 도난당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우리나라 문화재를 아니지만 이런 귀중한 유물이 잘 관리되고 많은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보통 카이로를 둘러보려면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 것 같다. 먼저 너무나도 유명한 고고학 박물관이 있는 카이로 중심부, 콥트 교의 문화를 볼 수 있는 올드 카이로, 다양한 이슬람 건축물과 카이로의 가장 큰 기념품 센터 한 하릴리가 있는 이슬람 지구, 그리고 카이로 타워가 있는 나일강 위의 중앙섬이 있다.
카이로를 지나는 나일강에는 두 개의 섬이 있다. 하나는 게지라 섬이고 다른 하나는 로다 섬이다. 그 중 카이로 타워는 게지라 섬에 있다.
난 어느 도시를 여행하든 거의 빠지지 않고 전망대에서 그 도시를 내려다본다. 도시에 대한 자신만의 지도를 그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좋기 때문이다. 이래서 사람들이 높은 곳에서 살고 싶어 하나 싶기도 하고..
카이로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이집트에 가기 전부터 카이로 타워에서 바라보는 일몰이 멋지다고 들었기 때문에 카이로에 도착하자마자 카이로 타워로 향했다. 하늘에 뿌옇게 먼지가 있어 시야가 좋지는 못했지만 멀리 희미하게 기자 피라미드까지 눈에 들어왔다. 난 천천히 도시가 붉게 물들고 땅거미가 질 때까지 한없이 내려다보았다.
비행기가 착륙하기 위해 낮게 나는 동안 도시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이 순간이 새로운 도시에 대한 설렘으로 가장 흥분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과연 카이로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황토색의 건물들로 가득한 도시, 하늘에서 보면 도화지위에 황토색으로만 칠해 놓은 듯한 느낌을 받게 되는 도시. 혼돈의 도시라 불리는 카이로. 이번 중동 여행의 첫 출발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