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태 박사님

 | WHO
2013/02/11 00:37
WHO에서 기억에 남는 일 중 하나가 한상태 사무처장님을 만난 일이다. 박사님께서는 1989년부터 1999년까지 WHO Western Pacific Regional Office의 사무처장으로 역임하셨다. 우리나라 최초로 국제기구의 장이 되신 분이기도 하다.

운이 좋게 박사님의 강의를 여러 번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한국에서 보건국장으로 지내셨을 때의 일화, 전두환 대통령과의 일화, 캄보디아 국왕과의 일화 등등 박사님의 수많은 경험담을 들을 때면 정말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르게 지나가게 된다. TV나 신문을 통해서나 접할 수 있는 이런 이야기를 박사님께 직접 듣게 되면 나도 모르게 이런 분들을 아는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한다.

박사님의 말씀 속에는 너무나도 배울 것들이 많지만 그 중 리더십에 대한 부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WPRO의 모든 division에서 진행되는 일을 담당자만큼 자세히 알고 회의에서 피드백을 해주셨다고 한다. 퇴임을 하신지 10년이 지난 지금도 WPRO에서 다시 사무처장을 하실 수 있을 정도로 이곳에서 진행되는 일들을 잘 알고 계신다. 얼마나 노력을 많이 하셨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또 모든 직원들의 생일카드를 손수 써주실 정도로 조직에 대한 애정도 있으셨다.

박사님의 말씀 중에는 내 자신을 반성하게 되는 것도 있었다. 후진국 사람들은 일이 어느 정도 진행되면 이정도면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대충 마무리하고 끝내는 특징이 있다고 한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일을 완벽하게 끝낼 수 있는데 그 약간의 노력을 하지 않는다고.. 이런 것을 보고 박사님께서 만드신 용어가 “maybe okay mentality"라고 하신다. 생각해보면 나 역시 일을 대충 마무리하고 끝내는 경우가 많았다. 앞으로 늘 신경 쓰고 고치도록 노력해야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박사님께서 걸어오신 길을 보면 일반사람들은 평생 하나도 이루기 어려운 업적들을 이루셨기 때문에 박사님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나와는 다른 차원을 분이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박사님을 만나고 더 높은 이상을 꿈꿀 수 있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렇게 박사님을 만나서 얘기를 들을 수 있어서 너무나도 큰 영광으로 생각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박사님과 함께
2013/02/11 00:37 2013/02/11 00:37
Posted by 승호

WHO에서 하는 일

 | WHO
2013/02/09 12:12
WHO에서 인턴을 시작할 때까지도 사실 난 WHO가 뭐하는 기관인지 잘 몰랐다. 세계보건기구라는데 그럼 아픈 사람들을 치료하는 국제기구인가?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개념이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WHO에서 인턴을 하고 왔다고 하면 무슨 봉사활동을 하고 왔냐고 묻는 친구들이 많은 걸 봐선 한편으로 나만 무식했던 게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이번 WHO에서 인턴을 하면서 IGO(InterGovernmental Organization)와 NGO(NonGovernmental Organization)의 차이도 알게 되고 WHO가 어떤 기관인지도 알게 되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봉사활동은 NGO에서 많이 한다. NGO는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는 나라에서 환자를 치료하는 국경없는 의사회처럼 주로 현장에 나가서 활동을 한다. 하지만 WHO는 현장에 나가는 것보다는 나라의 정부기관(주로 보건복지부)과 협력해서 정책이나 가이드라인을 결정하는 일을 한다. 그렇다고 의료수준이 많이 못 미치는 나라에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시킬 수 있는 기관은 아니다. 그렇게 되면 그 나라의 주권을 침해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나라의 의료수준이 국제기준에 얼마나 못 미치는지 등을 보여줌으로써 문제를 인지하고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WHO에서 느낀 바로는 참 뽀대(?)나는 기관이라는 것이다. 사실 사무실 환경은 우리나라에 비교하면 한참 떨어진다. 시설도 낡고 행정 처리도 느리고.. 하지만 이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결과물이 세상에 주는 영향력은 대단하다. 한 예로, 내가 있던 EPI는 Polio, Measles & Rubella, Japanese Encephalitis의 Elimination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 WPRO에서는 Polio는 elimination됐고 Measles도 거의 사라진 상태다. 전 세계적으로 보면 Polio virus는 나이지리아,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이렇게 세 나라만 남은 상태고 여기에서까지 제거된다면 Polio는 small pox에 이어 두 번째로 인류가 박멸한 질병이 된다. 또한 이 기관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보면 보통 보건복지부 장관을 비롯해서 그 나라의 리더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런 세계적인 사람들의 문화나 행동방식을 보고 경험할 수 있다는 것에 개인적으로 많이 부러웠다.

이런 WHO에서 일하는 것에도 단점은 있다. 이런 결과물들이 가시적이지 않고 단지 숫자로만 보인다는 것이다. 내가 Vaccination사업을 해서 한 나라의 coverage가 60%에서 90%로 올랐다거나 전년 대비 발병률이 몇 % 줄었다는 통계적인 수치만 얻을 뿐이지 사람들이 그 병으로 인해서 받던 고통이 얼마나 줄었는지는 체감할 수가 없다. NGO의 경우는 반대다. 현장에서 약을 주거나 치료를 하면서 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 낫는 모습을 직접 볼 수는 있다. 하지만 일하는 본인은 치료되는 환자를 보면서 보람을 느낄지 모르겠지만 이러한 개별적인 치료로는 한 나라는커녕 그 마을조차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사실 IGO나 NGO나 어떤 게 더 좋고 나쁘고 한 개념은 아니다.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가 어떤 것이냐에 따라 일을 선택하는 것이지.. 이렇게 국제기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배운 것만으로도 WHO에서의 인턴생활은 그만큼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WPRO

2013/02/09 12:12 2013/02/09 12:12
Posted by 승호

반성

 | WHO
2013/02/08 23:50

WHO internship에 지원하기 위해 제출서류를 준비하면서 느꼈던 일이다. Internship에 지원하기 위해서 CV, cover letter, recommendation letter를 준해해야했다. WHO에 계신 한국직원의 도움으로 과거 WHO 인턴의 cover letter를 참고할 수 있었는데 그 인턴의 글을 보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WHO에서 인턴을 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시간동안 준비했고 노력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개인적인 내용이라 자세히 언급하기는 그렇고 한 가지만 예를 들어본다면 대학을 다니는 동안 WHO에서 일하게 되면 도움 될 과목들을 찾아 수강한 것이다. 최소한 WHO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찾아보고 그것에 필요한 것을 준비할 만큼 관심이 있었다는 것이다. 자기 목표를 위해 이렇게 준비하는 게 당연한 일일 수도 있겠지만 WHO가 무엇을 하는 기관인지조차 정확한 개념도 없이 국제기구에서 일해보고 싶다고 지원하게 된 나에게는 얼마나 안일한 생각을 하고 있나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WHO internship을 지원하면서 정작 내가 한 게 거의 없다. 언제 지원하라고 알려주시고, 자신의 CV를 참고하라고 보내준 선배도 있고, recommendation letter를 쓸 때 참고하라고 보내준 동기, cover letter 역시 참고하라고 보내주셨고, 영어를 못하는 나를 위해 내 서류를 교정해준 캐나다 친구와 룸메 선빈이.. 주위사람들의 이런 도움이 없었다면 난 인턴생활을 절대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가만 보면 내 삶은 늘 이런 식이었다. 난 아무런 능력도 없는 사람인데 예쁜 옷도 입혀주고 맛있는 음식도 떠먹여주는 주위사람들의 도움으로 여기까지 오게 됐다. 또 세상은 나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대학 들어갈 때도, 의전원이란 제도가 생긴 것도, 그리고 내가 가장 가고 싶었던 연대가 나에게 가장 유리한 전형이었던 것도.. 스스로 노력을 전혀 안한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내가 노력한 것보다 많이 얻는 삶을 살았다. 요즘은 그런 것에 익숙해져 있어서 너무 나태해졌음을 느낀다. 그저 잘되겠지 하는 막연한 믿음 때문에.. 세상이 내게 기회를 주는 만큼 나도 그만큼 노력하는 게 당연한 이치라고 생각한다. 이제라도 다시 정신 차리고 열심히 살아야지.

2013/02/08 23:50 2013/02/08 23:50
Posted by 승호

ID card

 | WHO
2013/02/05 01:39

WHO로 출근한지 3일 만에 나온 ID. 그동안 매일 여권을 갖고 다니며 행여나 소매치기 당하지는 않을지 마음 졸였다는..

사용자 삽입 이미지
Intern/EPI
2013/02/05 01:39 2013/02/05 01:39
Posted by 승호

Asian Social Institute

 | WHO
2013/01/31 00:48

인턴생활을 하려고 필리핀의 물가를 알아보니 생각보다 비쌌다. 예전에 얼핏 들은 기억으로는 한 달에 50만원이면 수영장 딸린 집에서 개인과외선생님을 두고 영어를 배운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완전 딴판이었다. WHO에서 인턴을 한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니 보통 숙소는 보통 한인 홈스테이나 몰에 있는 아파트에서 생활을 했다. 한인 홈스테이는 한 달에 대략 70만 원 정도이고, 아파트는 그것보다 비쌌다. 숙소가 좋든 나쁘든 잠만 자면 되는데 그렇게 돈을 내기가 아까웠다. 차라리 저렴한 숙소를 구하고 남은 돈으로 맛있는 음식이나 즐기는데 쓰고 싶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ASI

여기저기 알아보다 알게 된 곳이 지금 내가 머물고 있는 Asian social institute(ASI)이다. 전에 이곳에 잠깐 머물렀던 인턴의 소개로 알게 된 곳인데, 우선 가격이 파격적이다. 한 달에 달랑 6000페소. 우리나라 돈으로 18만원 밖에 안 된다. 하지만 싸면 그만한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공동화장실과 공동샤워실에 방은 매우 좁다. 에어컨은 사치요, 힘겹게 돌고 있는 낡은 선풍기에 의지해 더위를 이겨내야 했다.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때 든 느낌은 다시 훈련소로 온 기분이라고나 할까? 괜히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추리한 내 방

처음 생활하면서 가장 문제가 됐던 부분이 모기와 더위였다. 모기에 물리는 것도 짜증났지만 필리핀은 말라리아와 댕기열이 있는 곳이라 그게 가장 신경 쓰였다. 그 문제는 침대에 모기장을 치는 것으로 해결. 필리핀에 처음 왔을 때는 무척 덥게 느껴져서 선풍기를 틀어도 잠자기가 힘들었다. 그런데 겨울이라 기온이 떨어진 건지 몸이 이곳의 온도에 적응한 건지 요즘은 선풍기를 틀지 않고도 잘 잔다. 샤워실도 지저분하다고 느꼈는데 금방 적응이 됐다. 뭐.. 제중학사도 처음에는 이런 곳에서 어떻게 살까 걱정했지만 지금은 잘 살고 있으니..

이곳 생활에 적응이 되니 ASI의 좋은 점이 눈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사실 ASI는 대학원이다. 그러니까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은 대학원의 기숙사가 되는 것이다. 베트남, 미얀마, 중국 등 아시아의 다양한 나라에서 유학 온 학생들이 살고 있는데 학생들 하나하나가 다 착하다. 이 친구들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얘기하겠지만 이 친구들 때문에 이곳에서의 생활이 활기차고 생기 있어지기 시작했다. 또 WHO와 걸어갈 정도 가까운데다 문 앞을 지나가는 모든 Jeepney가 WHO를 지나가기 때문에 교통이 무척이나 편하다. 근처에는 Robinson mall이라는 대형 쇼핑몰도 있고 ASI 바로 앞은 재래시장이 있어 생활하기도 편하다. 무엇보다도 ASI 주위는 다른 지역에 비해 안전하기 때문에 늦은 시간에 들어가도 안전해서 좋다. (안전하다고 해도 늘 경계는 하고 다닌다.) 게다가 문에 항상 경비가 감시하고 있고..

지금은 이곳에서 살고 있는 게 너무나 좋다. 특히 여기 친구들 때문에 이곳을 떠나기 싫어진다. 지금도 몰에 있는 아파트로 들어갈 수는 있다. WHO에서 같이 인턴을 하는 분이 언제든 그냥 들어와 살아도 좋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아파트로 가면 돈도 절약되고 좋은 시설에 쾌적한 삶을 살겠지만 난 지금 생활이 너무도 행복하다. 인턴생활이 끝날 때까지 여기서 지낼 생각이다. 처음 도착해서 어떻게 살까 걱정하던 내가 ASI를 이렇게 좋아하게 되다니 생각하면 참 웃긴 일이다.

2013/01/31 00:48 2013/01/31 00:48
Posted by 승호

필리핀의 첫인상

 | WHO
2013/01/13 00:43

WHO의 인턴이 확정된 후 앞으로 두 달 생활하게 될 필리핀에 대해 찾아보게 되었다. 내가 필리핀에 살게 될 거라고는 생각해본 적도 없었고, 그동안 필리핀에 대해 좋은 얘기를 들은 적도 없었다. 치안이 안 좋고(특히 내가 살게 될 마닐라ㅠ), 성매매가 활개를 치고, 맥주가 싸다는 정도??

찾아볼수록 마음에 걸리는 게 치안문제였다. 소매치기가 많은 것은 내가 늘 정신을 차리면 된다고 하지만 강도를 만나는 것은 그야말로 복불복 아닌가? 길가다가 등에 총이나 칼을 겨누고 돈을 달라고 하면 방법이 없지 않나? 돈뿐만 아니라 돈이 될 만한 건 다 빼앗긴다고 보면 되니..

그동안 인도, 네팔, 미얀마를 오랜 기간 여행했고 각종 사기꾼, 소매치기를 만났지만 최소한 이들 나라는 여행자를 위협하지는 않았다. 인도만 하더라고 그 많은 사기꾼을 만났지만 사기를 치다가도 내가 화를 내면 능글맞게 ‘calm down'하며 기분을 풀어주곤 했다. 하지만 필리핀은 진지하게 목숨을 걱정해야할 판이니 가기 전부터 마음이 심란했다.

WHO에서는 공항 pick-up service를 제공한다. 운이 없게도 난 필리핀 공휴일에 끼는 바람에 알아서 숙소까지 가야만 했다. 영락없이 택시를 타야해서 가이드북에 찾아보니

1. 정차해 있는 차보다는 움직이는 택시를 세운다.
2. 택시 문을 열고 아직 타지 않은 상태에서 미터기를 가리키며 ‘미터?’라고 미리 확인하면 좋다.
3. 미터기를 켜지 않으면 ‘미터 플리즈’라고 말하고 만약 딴소리를 하면 내릴 준비를 한다.
4. 요금에 대해 협상을 해야 한다면 일단 미터기를 켜게 하고 그 요금에서 얼마를 더 주겠다는 식으로 하는 것이 좋다.
5. 절대 싸우지는 말 것. 치명적인 위험에 빠질 수도 있다.
6. 요금에 대한 모든 결정은 택시를 잡고 타는 과정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여기서 가장 거슬리던 사항이 5번이었다. 이건 사기를 쳐도 당하라는 말아닌가?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어쩌겠나. 로마에 왔으면 로마법을 따라야지. 위 사항을 숙지하고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한국유학생처럼 보이는 사람을 발견하곤 말을 걸었다. 여기서 5년 살았단다. 게다가 마침 가는 방향도 나랑 같고.. 잘 됐다 싶어 옆에 붙어 같이 가기로 했다. 공항에서 나오자마자 택시기사가 달라붙는다. 보통 나 같으면 대꾸도 않는다. 이런 사람들 대부분이 사기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유학생은 아무 말 없이 따라가는 것 아닌가? 나보다 잘 알겠지 하면서 나도 따라갔다. 유학생이 필리핀어로 목적지를 말한 후 택시는 움직였다.

그런데 예상했던 대로 택시기사는 미터기를 켜지 않았다. 그러면서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을 부르는 것이었다. 한국유학생도 ‘아! 사기 당했네.’ 하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것이다. 그것도 5년이나 살았다는 사람이.. 어이가 없어서 난 차 세우라고 했고 뻔뻔한 택시기사는 100페소를 달라는 거다. 겨우 100미터도 채 가질 않았는데.. 어차피 질 안 좋은 택시기사하고 싸우면 위험할 것 같아서 그 돈만 내고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는 미터로 가는 택시를 타고 숙소로 왔다. 이게 내가 처음 필리핀에 내리자마자 겪은 일이다.

아무래도 여기서 적응하고 익숙해지는데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2013/01/13 00:43 2013/01/13 00:43
Posted by 승호

BLOG main image
by 승호

공지사항

카테고리

전체 (524)
끄적끄적 (111)
훈민정음 (43)
찰칵 (111)
여행기 (131)
맛집 (13)
감상 (13)
웃어요 (29)
이것저것 (14)
SFU (43)
WHO (16)

태그목록

글 보관함

달력

«   2024/11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Total : 1632691
Today : 218 Yesterday : 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