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촌마취과

2014/06/15 15:28

신촌마취과로 오기까지도 많은 일이 있었다. 1텀에 마취과에서 두 명이 사직을 했기 때문에 이번 텀을 도는 마취과 인턴 중 한 명은 다른 과로 충원을 가야하는 상황이었다. 근데 충원되는 과가 난이도 10점의 정형외과라는 청천벽력 같은 공지를 보게 되었다. 1/10의 확률이라지만 난이도 6~7점의 신촌마취에서 신촌정형외과의 충원은 분명 살 떨리는 일이다. 게다가 이렇게 강압적으로 충원되는 상황이 아니라면 신촌마취에서 신촌정형으로 바꾸는 대신 300~400만원을 주는 상황에서 금전적으로도 아까운 일이다.

그런데 다음 날 재공지가 올라왔다. 난이도를 고려해서 일산영상의학과로 충원인원을 보낸다는 것이다. 일산영상의학과는 난이도가 4점정도 되는 꿀 중의 꿀로 우리는 하루 동안 천국과 지옥을 왔다 갔다 했다.(그 무시무시한 신촌정형외과는 신촌내과에서 충원하게 되었다.) 이제는 편한 과를 찾아 일산영상의학과를 가야할지 원래 가려고 했던 마취과를 갈지 행복한 고민을 하는 상황이 됐다. 나는 편한 과보다 내가 하고 싶었던 마취과를 가기로 했다. 요즘 수술과에 관심이 많은데 수술과 항상 관련이 있는 마취과에 대해서도 경험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수술하는 동안 마취과에서는 어떤 일을 하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마취과의 일은 생각처럼 녹록치 않았다. 지금까지 했던 수술방이나 병동 잡일과는 다른 종류의 일을 하는데 일을 배울 틈도 없이 바로 혼자 환자를 keep하게 된다. 게다가 실수라도 하게 되면 환자의 생명과도 연관되는 상황이라 그로부터 오는 부담감은 무척이나 심했다. 무슨 일이 있으면 레지던트나 펠로우 선생님께 연락하면 되지만 계속 연락하기도 눈치 보이고 어떤 상황이 정말 중요한지 모르니 가슴만 탔다. 환자의 혈압이 이유도 없이 갑자기 10~20 떨어지거나 상승하게 되면 내 혈압도 같이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했다.

마취를 깊게 하면 혈압이 떨어지고, 그렇다고 얕게 하면 환자가 깨는 상황이 벌어진다. 그 사이에서 줄타기를 잘 해야 하는데 처음에는 어느 정도가 환자가 깨는 상황인지를 모르니 떨어지는 혈압을 올리려고 가스를 줄이면 그때부터 환자가 깰까 조마조마 하게 된다. 1텀 돌 때 마취과에서만 인턴 두 명이 도망갔다고 들었는데 정말 첫 주를 돌 때는 그 인턴들의 심정이 이해가 갔다. 나도 일산영상의학과를 갈 걸 괜히 마취과 왔다고 후회 많이 했으니까..

마취를 며칠 돌아보니 기본적인 개념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제 어느 정도 일이 손에 익고 어떤 상황에서 환자가 깨는지 알고, 어떤 상황에서 어떤 약을 써야하는지 알게 되고 나니 좀 여유가 생겼다. 처음 시작할 때는 너무 힘들다고 느껴서 후회도 됐는데 그동안 힘든 만큼 마취과에 대해 많이 알게 되고 배우게 되어 내 선택에 만족한다. 또 그동안 해오던 잡일과는 달리 수술하는데 꼭 필요한 역할을 하는 것 같이 보람도 느끼는 요즘이다.

2014/06/15 15:28 2014/06/15 15:28
Posted by 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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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유성환
    2014/07/06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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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오랜만에 들렸다가 가요ㅎㅎ
    저도 같은 고민한 적이 있어서 강남산부로 바꿨었는데...
    역시 형은 잘 헤쳐나가셨네요 ㅋㅋ
    • 승호
      2014/07/13 13:36
      댓글 주소 수정/삭제
      잘 헤쳐 나가긴.. 그냥 몸빵 한 거지ㅋㅋ
      강남에서 자리 넘겨줘서 침대 잘 쓰고 있어.
      고마워~^^
  2. 김정훈
    2014/08/19 23:27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새 글 좀 써라 ㅋㅋㅋ 들어올 때 마다 신촌 마취과네
    • 승호
      2014/09/06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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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은 일이 많아서 힘들고 10월에는 많이 쓸 수 있을 것 같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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