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만 바라보기

2015/01/01 15:02

본과 3학년 선택실습을 할 때였다. 선택실습이 힘들기로 유명한 산부인과를 돌고 있었는데 일과는 당직이 없는 날이면 아침 6시에 시작해서 보통 10시쯤 끝났던 것 같다. 나중에 교수님께서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실습일정을 짠 이유에 대해 설명해주셨다. 일이 힘들어도 일에 빠져있으면 적응하고 하게 되는데 다른 사람들과 자신의 처지를 비교하기 시작하면 못한다고.. 그래서 다른 동기들과의 접촉을 아예 차단하기 위해 이렇게 하는 거라고 말씀하셨다.

생각해보면 정말 맞는 얘기다. 산부인과를 배워보고 싶어 힘든 줄 알면서도 지원했고 교수님의 배려로 산부인과에 대해 많이 배울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2주내내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하고 종종 당직도 섰던 산부인과와는 달리 정신과 같은 과는 아침에 잠깐 병원에 나갔다가 12시도 되기 전에 끝났다. 만약 산부인과를 돌면서 그런 사실을 알았다면 내가 왜 이런 고생을 사서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을 것 같다. 물론 내가 배우고 싶어서 선택했지만 그런 생각은 사라지고 당장 쉬고 친구들 만나서 놀고 싶은 마음이 더 크기 때문이다.

다시 이때의 기억을 되살릴 때가 온 것 같다. 병원에서 힘들기로 손가락 안에 드는 이비인후과를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사실을 몰랐던 것도 아니다. 하지만 편한 과를 전공하는 동기들을 보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긴 한다. 일단 나는 남은 인턴 스케줄에 상관없이 이비인후과를 돌아야 하고, 2월에 새로운 인턴이 선발되면 보통 2주 전에 부르기 때문에 2주의 휴가를 받을 수 있지만(나도 2월 중순에 불려 들어갔다.) 이비인후과는 휴가 없이 바로 1년차를 시작한다. 그리고 1년차가 시작되면 퐁당퐁당 또는 퐁퐁당의 오프를 받는 다른 과와는 달리 100일 당직에 1년 내내 일주일에 한 번 오프를 나가게 된다. 이렇게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게 되면 끝이 없는 것 같다.

다른 곳을 보지 않고 나에게 주어진 일만 하게 된다면 그 삶에 적응하게 되고 또 그 속에서 즐거움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다 내가 원해서 선택한 길이 아니겠나? 지금은 주변과 비교하지 않고 내 일만 바라보는 자세가 필요한 때인 것 같다.

2015/01/01 15:02 2015/01/01 15:02
Posted by 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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